'ARTistic/글쓰기'에 해당되는 글 3건

ARTistic/글쓰기

대학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던 것은, 나중에 무언가가 내 발목을 잡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훗날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싶어졌는데, 학점이나 스펙이 딸려서 시도조차 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면 어떡하지?' 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내 발목을 잡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진짜 문제는, 내가 하고 싶을 '이러이러한 일'이 저절로 생겨날 것이라는 뜬구름 잡는 믿음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나를 속여왔다. '오늘은 이걸 하고, 내일은 저걸 하고, 아 정말 바쁘지만 생산적으로 살고 있어!' 라는 생각은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기를 두려워하는 내 자신의 방어기제였던 것이다.

 

내게 하루하루 바쁘게 산다는 것은 진통제 같은 것이었다.

 

병에 걸린 사람에게 진통제를 투약해 그 고통만 잊게 만들었던, 눈가리고 아웅 격으로 살아온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했지만, 지금 내 상태로 고스펙이 필요한 기업에 간다는 것은 꽤나 많은 노력을 요한다.

 

못 간다는 건 아니지만, 무척 피곤한 일이 될 것이 분명하다.

 

내가 그 피곤을 감수하고서 대기업에 갈 이유가 있는가? 아니다.

 

남들 다 하는데 나라고 안될 것 같아? 하는 마음의, 어떤 종류의 객기고, 치기다.

 

이는 단지 또 다른 방어기제로서의 자기합리화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서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치자, 그래도 내 목표는 '입사',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사람들에게로의) 증명 그것 뿐이었기에, 궁극적인 목표의식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나는 그 이후에 어떤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게 될 것인가?

 

직장인들에게 대학생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일을 하고싶으세요? 라고 물었을 때, "토익을 좀 더 일찍 시작할걸", "좀 더 좋은 곳으로 인턴을 했어야 했는데" 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적어도 나로써는 본 적이 없다).

 

"좀 더 많이 놀러다닐껄" 이라고 답해주는 사람이 태반이다.

이는 물론 '클럽 많이 다닐걸', '술을 더 마시고 다닐걸' 이런 뜻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때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간을 가지고 진로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볼걸"의 뜻이 함축된 말이란 것이다.

 

 

사실 나를 채찍질하고 닥달하며 '빨리빨리!'를 외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모든 것은 실체 없는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의 근원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것은 수증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향해 쉐도우 복싱을 하고 있었는가?

'ARTistic >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무엇을 향해 쉐도우 복싱 하고 있었는가?  (0) 2016.05.22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  (0) 2016.04.27
나의 SF 꿈 이야기  (0) 2016.03.09
0 0
ARTistic/글쓰기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교환학생을 갈까 말까 고민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 가기로 결정하지 못했던 것은 '9학기를 다녀야 해서'도, 돈 문제 때문도 아니었다.


단지 내가 정말 가고싶은지에 대한 해답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도 알고 있었다, 그건 남들이 다 가니까 나도 안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 였다고.


나는 안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게 낫지! 라는 쿨해보이는 포부와 함께 길을 떠났고,


결과적으론 그닥 행복하지 않은 나날들을 보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가방 통째로 도둑맞은 건 그렇다고 친다),


내가 잘 하고 있는건가, 이게 맞는 건가 싶어서 정적 속 혼돈의 나날들을 보낸 기억 뿐이다. 




다녀와서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고(어학성적 나부랭이조차도)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얻은 것이 있다.


하긴, 뭔가 도전했는데 아무 것도 얻지 못할 수가 없다.


삶을 살면서도 앞으로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올 것이란 거다.




남들의 기준과 욕망에 내 자신을 맞추다보면 항상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그러면 '남들이 하는 걸 보니, 나도 하고 싶다' 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저 포기하는 게 이에 대한 해답인가?


그런 생각이 이미 들었다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지 이건 남들 다 하는거잖아! 하면서 마음을 접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남들 하는 거라고 해서 그게 가치없는 일이라는 것과는 다른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확신과 신념이 있다면 그런 생각이 처음부터 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예창작을 복수전공으로 고를 때 나는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았었다.


실무적으로 도움이 되는 학문은 아니고, 또 그 당시에는 내 주변에 그 과를 고른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글 쓰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고민조차 하지 않았던 그 단단한 선택은 지금까지 한 번도 내 발목을 잡은 적이 없다.


듣기 싫은 필수과목을 들어야 할 때도, 밤 새서 재미없고 두꺼운 고전을 몇 권씩 읽어야 할 때도, 


밤을 새도 작품을 완성하지 못해 수업 5분 전까지 원고를 고칠 때도 괴롭지 않았고, 후회하지 않았다.




나 또한 내 미래에 대한 확실한 생각이 있었다면, 동기들이 교환학생을 가건 말건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내가 정한 내 길을 가느라 바빴겠지.




나는 남들과 달라지고 싶어하면서도, 막상 남들과 다른 길을 가려하면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겁쟁이다.


이건 다 내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없어서다.


하지만 남들 하는 만큼만 사는 것, 남들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한 종착지가 어디인지는 분명하다.


흔히 볼 수 있는, 찌든 표정과 쳐진 어깨를 가진, 재미 없는 삶에 치이며 꾸역꾸역 사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되는 거다.


그런데도 본인은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으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 생각인가?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의지 혹은 신념이라는 것은, 할까 말까 할 때 어떤 강한 힘에 의해 '안돼!' 하는 게 아니라,


할까 말까 하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자신만의 무언가를 가진 사람에겐 이런 고민이 없다.




'ARTistic >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무엇을 향해 쉐도우 복싱 하고 있었는가?  (0) 2016.05.22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  (0) 2016.04.27
나의 SF 꿈 이야기  (0) 2016.03.09
0 0
ARTistic/글쓰기

2016..03.08 신기한 꿈을 꿨다

 

 

 

 

나는 우주선 안이었고, 내 손엔 스위치가 들려있었다.

 

내가 그 스위치를 누르면, 우주는 태초로 돌아가 시간도 공간도 차원도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내 곁에 있던 동료들은 겁먹은 얼굴로, 제발 스위치를 내려놓으라며 나를 말렸다.

 

 

 

꿈 속의 나는 더 이상 살고싶지 않았다. 그것은 자살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살고싶지 않다'는 것은, '죽고싶다'와 같은 말이 아니다.

 

 

단지 사는 게 부질없었다고 생각했기때문에

 

나는 이기적이게도, 별로 망설이지 않고 그 스위치를 눌렀다.

 

곧 아무 의식도 없이 모든 것이 증발하듯 소멸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 때의 생각과 느낌이 내가 이 꿈을 신기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하얀 빛이 모두를 감쌌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 시간과 차원조차 사라진 상태에서

 

나와 내 동료들은 의식, 아니 영혼만을 가지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육체라 불리울 것도 우리에겐 없었다.

 

 

 

꿈 속에서, 나는 내 의식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스위치를 누를 때도 느끼지 못했던 공포를 느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나는 그 스위치를 누르지 않았을텐데.

 

왜 내 의식만이 여기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걸까?

 

 

나와 동료들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우주선(이라기엔 모호하다. 그냥 그 공간... 이라 부르면 좋을까?)을 돌아다녔다.

 

아니, 우리는 그 곳을 그저 흘러다녔다.

 

 

모든 물체들이 투명한 상태가 된 우리들을 그냥 통과했다.

 

그건 베르나르베르베르 소설의 한 부분 같은 느낌이었다.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있어야 할 지 모른다. 시간이라고 불리울 것이 사라졌기 때문에 어떠한 기준점도 없다.

 

돌아갈 곳도 없고, 내가 알던 어떤 것도 남아있는 것은 없다.

 

아무것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어떤 것도 아닌 존재'가 된 상태에서, 강렬한 삶의 욕구를 느꼈다.

 

 

 

잠깐 꿈에서 벗어나 눈을 떴다.

 

이내 나는 시간과 공간과 차원이 있는 이 곳에 정상적인 상태의 어떤 것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크게 안도했다.

 

풍경을, 시간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나는 또 다시 잠에 빠져들었고,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다시 시작한 꿈 속의 내 손에는 또 다른 스위치가 새로이 들려있었다.

 

그걸 누르면 세상은 진공상태로 변할 것이며, 우리는 '어쩌면' 소멸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튼 나는 다시 한 번 스위치를 눌렀다.

 

이번엔 좀 망설였던 것 같다.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었지만,

 

진공상태라는 것이 혹여나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까 두려웠다.

 

우습게도 나는 숨 쉬길 원했다.

 

내가 정말 증발하길 원했는지, 아니면 살기를 원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숨을 쉴 수 없을 지도 몰라' 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잔뜩 겁먹은 채 숨을 꾹 참았다.

 

어쩐지 서서히 주변의 압력이 높아지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용감하게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놀랍게도 호흡에는 아무런 방해가 없었다.

 

그리고 또 다시, 우리의 상태엔 아무 변화가 없었다.

 

 

나는 깊이 실망하며, 정말로, 잠에서 꺠어났다.

 

 

 

 

 

 

 

 

 

 

 

'ARTistic >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무엇을 향해 쉐도우 복싱 하고 있었는가?  (0) 2016.05.22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  (0) 2016.04.27
나의 SF 꿈 이야기  (0) 2016.03.09
0 0
1
블로그 이미지

1인칭관찰자